북성, 몽촌토성에 가다
북성 친구들과 한경란 선생님의 몽촌토성 기행
11월 28일 겨울 문턱에서, 북성초 4학년 은영, 민규, 승원, 정현은 한경란 선생님과 함께 몽촌토성에 모여 한성 백제 역사의 모든 것을 공부할 참!
“이집 저집 김장한다고 빠진 친구들 몫까지 다하리라!”(불끈)
그런데 어째서 몽촌토성에 갔냐고요? 그거야, 몽촌토성이 백제 첫 도읍인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곳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개로왕이 여기 몽촌토성에서 항전하다 고구려 군에게 사로잡히기도 했잖아요?
빨갛게 물든 단풍이 멋지죠? 다리 아래 해자는 성내천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만든 것입니다. 아무래도 해자를 건너 표고 30~43미터 된다는 제법 높은 토성으로 올라가려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백제 때는 저 멋진 다리는 없었을 거구요.
다리를 지나 우리는 토성을 향하여 고구려 군인양 씩씩하게 올라갑니다.
“우리는 고구려 군이다. 개로왕 당신을 체포하겠어!”
정말로 백제의 운명이 이곳에서 끝나는 것일까요?
우와, 제법 토성 아래가 가팔라 보이지요?
몽촌토성은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왕성인 풍납토성의 산성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 비록 고구려의 산성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이용하여 판축법으로 흙을 다져 튼튼히 성을 쌓아 유사시 피난할 만했거든요. 또 관청이었을 만한 넓은 집터, 기와 등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뼈 갑옷이라든가 동쪽 망루 쪽의 군인용 수혈 주거지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몽촌은 군사적인 목적이 더 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죠. 요렇게 답답할 땐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네요.
우리는 서쪽 토성 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백제 역사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4학년인 우리한테는 온조의 건국 설화는 껌이고요, 고이왕이 백제의 법과 관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았다는 건 새롭게 안 사실입니다. 근초고왕이 나라 땅을 넓힌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신이 나요. 그리고 도림의 꾀에 넘어간 게 백제 멸망의 근본 원인은 아니겠지만 개로왕이 조금은 안됐습니다.ㅠㅠ
뒤에 계단식 돌무지무덤 보이지요? 석촌동 계단식 돌무지무덤 중 3호분은 장수왕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장군총과 비슷합니다. 3호분은 정말로 근초고왕의 무덤일까요? 옆에는 시기적으로 뒤에 발달한 백제 무덤의 전형인 굴식 돌방무덤도 있어요.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세발토기도 보았어요. 주로 제사에 쓰였던 것 같아요. 궁궐이나 귀족의 집에나 썼다던 동전무늬기와도 있었어요. 진짜 뼈 갑옷을 보고 싶었는데 고걸 보지 못해 살짝 아쉬움~
풍납토성에서는 나무기둥이 물에 닿아 썩을까 봐 기둥을 보호해 주던 10각초석도 나왔어요. 하수관으로 쓰던 토관도 다수 출토되었다니 놀랍지요? 국가 제사에 바치던 말의 머리뼈가 10마리 이상이나 나왔다니 음, 풍납토성이 역시 왕성이었지 싶네요.
이곳에선 백제를 공격한 고구려와 훗날 한강을 차지하는 신라의 유물들도 있어서 비교해 볼 수 있답니다.
우리는 한경란 선생님과 마무리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오, 승원, 민규, 정현이 모두 선생님 설명을 경청하는군요. 은영이의 눈빛은 초롱초롱^^
돌아오는 길, 백제 토성을 돌아보았으니 오늘만큼은 고구려 군과 끝까지 싸우는 용감한 백제군이 되어야겠지요. 그리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약 500여 년의 한성 백제 역사의 전말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똑똑한 역사 기행 팀이 되겠습니다.^^
글* 하늬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