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순수비
관련 교과 - 초등 사회 6-1 하나로 뭉친 겨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진흥왕 순수비
글 • 하늬바람~
Q 진흥왕 순수비에서 ‘순수’가 무슨 뜻이에요?
A 순수(巡狩)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천자는 천하를 돌아보며 천지산천에 제사를 올리고 지방의 정치와 백성을 살피지요.
이런 풍습이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준 이는 진시황이에요. 시황제(始皇帝)는 각지의 산에 올라 진나라의 덕을 찬양하는 각석(刻石)을 세웠답니다.
따라서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이 확장한 영토 내를 순수하면서(=돌아보면서) 신라의 국경이 여기까지임을 만천하에 알린 비인 것이죠.
Q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몇 개나 되나요?
A 가장 최근에 발견한 단양 적성비까지 합하면 모두 5개랍니다.
하지만 단양 적성비는 순수비와 약간 성격이 달라 순수비로 보지 않기도 하지요. 그렇담 4개라고 할 수 있을까요?^^
Q 어디 어디에 세웠나요?
A 마운령 순수비는 568년 8월에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에 세운 것으로 신하를 거느리고 국경지대의 민심을 살핀 내용이 새겨 있어서 당시 신라의 국경 ․ 관직 ․ 제도 ․ 지명을 밝혀주는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금석문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역시 568년 진흥왕 2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 세운 황초령비 역시 변경지역을 순수한 얘기와 더불어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지요.
창령의 진흥왕 척경비는 자연암석을 이용한 비로서 한반도에 전하는 비석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마모가 몹시 심한 편이에요. 서기 561년 진흥왕 22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북한산 순수비는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화강암으로 된 이 비는 다른 비와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비를 올렸으며 위에 뚜껑돌(蓋石)을 덮은 흔적도 있답니다.
비문에 적혀 있을 연호 간지가 마모되어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대요.
진흥왕 16년에 북한산을 순행한 일이 있지만 남아 있는 글자의 내용을 참착할 때 그때가 아니라 앞서 순수비를 세웠던 568년(진흥왕29년) 이후 진흥왕 생존 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