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선생님, 광화문이 다시 열렸다고 난리던데 전 불만이에요.
우미래선생님-아~아니, 뭐가 불만인데?
꾸러기-우리나라엔 문도 너무 많고 이름도 너무 많아요. 저번엔 남대문이 불탔다고 난리였는데 도대체 남대문과 광화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구요. 광화문도 그동안 멀쩡히 잘 있던데 왜 공사하고 다시 열렸다고 난리들인지 모르겠어요.


우미래선생님-흠흠,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구나.
일단 문 이름이 많아서 헷갈리지?  사실 꾸러기는 그게 제일 불만일것 같은데?
꾸러기-흐흐흐 사실 그래요.
우미래선생님-남대문부터 이야기할까? 옛날에 왕이 살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도시를 도성이라고 하는데 도성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있단다.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와 농사와 곡식의 신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 그리고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 그 도시를 둘러싼 성곽 이렇게 세가지지.


꾸러기-으~ 또 학습의 시작이다!
우미래 선생님-호호, 여하튼 남대문은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남쪽 문이란다.
반면 광화문은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 중 가장 먼저 세워지고 가장 중요한 궁궐인 경복궁의 남쪽문이자 정문이야.
지방에 있는 백성이 임금님을 뵙기 위해서는 남대문을 들어서서 경복궁의 광화문을 통과하고 그 밖의 여러 문을 들어 가야한단다.
남대문은 도시를 지켜주는 성곽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라는 것은 너도 알거야.
그런데 자신의 땅에 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땅을 팔았던 사람이 땅값 문제로 불만이 생기자 숭례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거야. 그래서 지금 복원 공사 중인거지.

숭례문 복구 모습

꾸러기-그렇군요. 그렇지만 멀쩡한 광화문은 왜 부수고 다시 짓는 거예요?
우미래 선생님-광화문 역시 사연이 많지. 광화문은 전쟁으로 두차례나 부서졌단다.
처음에는 임진왜란 때였지. 일본의 침입으로 경복궁이 불탈 때 광화문도 불이 났는데 금방 복원하지 못하고 270년이 지난 1864년 고종 때에야 다시 지어졌어.

고종 때 복원된 경복궁의 모습과 그 앞의 관청이 늘어선 육조 거리.

가까이서 본 광화문 모습- 앞에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일본은 지금의 광화문 뒤의 흥례문 주변 자리에 자신들의 관청인 조선총독부를 지었지. 조선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서야.
그리고 총독부를 가리고 있는 광화문을 헐어버리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알려지자 엄청난 반대가 일어났는데 심지어는 일본 국민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도 경복궁을 허는 데 반대를 했단다. 그래서 헐지는 않고 동쪽 건춘문 자리에 옮겨놓아버린거야.
꾸러기-으으, 그 말씀을 들으니 슬슬 화가 나는데요.
조선총독부를 세우기 위해 공사 중인 모습.
경복궁을 가리고 서 있는 조선 총독부 모습-광화문은 이미 옮겨져 보이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모습

우미래 선생님-그런데 해방이 되어서도 광화문의 수난은 그치지 않았어.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윗 부분이 부서지고 아래 기단인 돌부분만 남은거야. 전쟁으로 두번째 부서진거지.
그후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8년 경복궁 앞에 다시 세워지지만 제 모습, 제 자리는 아니었단다. 나무로 만들어야 할 것을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 올렸고 원래 관악산을 바라보던 것을 남산을 바라 보던 조선 총독부 자리에 그대로 세워 제 자리를 찾지 못한거야. 광화문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자신이 써서 붙였단다.
박정희 대통령 때 다시 지어진 광화문
한글로 쓰여진 박정희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우미래 선생님-그러다가 2006년 12월부터 복원을 시작해 이번에 위치도 바로 잡고 나무로 예쁘게 다시 지어 복원한거야. 경복궁의 상징이 다시 살아난거지.

복원된 광화문

꾸러기-아하! 그러니까 그동안 광화문이 멀쩡하지 않았던 거였군요. 헤헤.
우미래 선생님-그렇지, 많이 상처 입은 광화문을 이제 제대로 지은거야. 현판도 고종 때 광화문 공사 책임자인 영건도감제조 임태영의 글씨를 디지털로 다시 복원해 붙인 거란다.
꾸러기-흠, 선생님 인정하긴 싫지만 제가 좀 무식했네요.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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