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 선생님! 제가 남한에서 가장 큰 신석기 유적인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갔다 왔는데요. 신석기 시대는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바닥이 뾰족한 게 꼭 팽이처럼 생긴 것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그렇게 뾰족한 그릇으로 어떻게 밥을 해먹었어요?
우미래 선생 - 흠흠, 네가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갔다 왔다니 일단 기특하구나! 그런데 꾸러기야, 밥은 뭘로 하지?

꾸러기 - 그야 쌀이죠.

우미래 선생 - 그래. 그래. 그런데 벼 농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랬지?

꾸러기
- ....

우미래 선생 - 흠흠. 꾸러기, 좋지 않아. 
청동기 시대부터란다. 신석기 시대는 주로 잡곡을 키웠는데 처음에는 채집이나 수렵으로도 부족한 식량을 채우는 정도였지. 그러니 빗살무늬 토기에 밥을 해먹었을 리는 없겠지?

꾸러기
- 아하 그렇구나. 그럼 국만 끓여 먹었나?


우미래 선생 - 아이고, 그게 아니라~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던 신석기 시대에는 아직 불의 온도를 많이 높이는 기술도 없었고 가마를 만들지도 못했기 때문에 700도~8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굽던 빗살무늬 토기는 그다지 단단한 그릇이 아니었단다. 그래서 오래 물을 담아 놓으면 물이 빠져 버리기도 하고 흙가루가 녹아 나오기도 할 정도였지.


꾸러기 - 아니, 그런 그릇을 뭐에 써요?


우미래 선생 - 흠흠. 중요한 곳에 썼지. 바로 저장을 했던 거야. 그냥 땅에 곡식을 묻어 놓으면 썩거나 쥐 같은 동물이 가져가기도 쉽겠지? 그릇에 담아 저장하면 그런 것을 더 잘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릇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단다.


꾸러기 - 그런데 뾰족한 걸 어떻게 세웠어요?
         동북부 지방의 빗살무늬 토기

우미래 선생 - 세운 것이 아니라 모래 같은 흙에 박아서 썼단다. 암사동과 같은 강가나, 바닷가의 모래 흙에서는 바닥이 납작한 것보다 뾰족한 것을 박아서 쓰는 것이 훨씬 편리했거든. 그렇다고 해서 빗살무늬토기가 모두 뾰족한 것은 아니란다. 산지나 평지에는 바닥이 납작한 토기도 있지. 게다가 이름처럼 모두 빗살만 그려져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이름은 모두 빗살무늬토기라 하지.

꾸러기 - 뾰족해도 납작해도 빗살무늬든 손톱부늬든 내이름은야 빗살무늬토기라네 룰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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