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늬바람~ 


고창 삼인리 송악. 소가 잘 먹어 ‘소밥나무’라 부르는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67호. 두릅나무과의 덩굴성 식물이다.

<동백 아닌 송악이 반겨 주네>
2월 끝자락의 나뭇가지는 봄이 왔다고 말합니다. 나뭇가지 끝은 볼그레하게 물들지요. 살금살금 옷 속을 파고드는 소소리바람에 물오른 가지는 마지막 추위를 털어내려 애씁니다. 바로 그런 계절에 찾은 선운사. 일주문 건너편 도솔천 절벽을 푸른 잎사귀가 뒤덮고 있습니다. 전에는 왜 이 덩굴나무가 눈에 띄지 않았을까?

송악은 보통의 덩굴처럼 덩굴손으로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가지에서 뿌리가 나와 다른 나무나 울타리, 바위를 타고 올라갑니다. 아이비(Ivy)를 떠올리면 된다고 안내판에 씌어 있네요. 그러고 보니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이 모양새며 분위기가 흔히 기르는 아이비와 닮았습니다. 가을에 황록색 꽃을 피우고 봄에 까만 열매가 익어간다니 지금쯤이면 작은 도토리처럼 생긴 귀여운 열매가 어여쁠 것 같은데, 시냇물 저 멀리라 볼 수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송악이라 이름 붙인 이유? 바위를 휘감아 올라간 소나무처럼 푸른 상록성 식물이기 때문 아닐까요? 한겨울에 바위에 둥지를 튼 소나무를 보는 듯 푸르른 기상에 시야가 확 트이는군요. 새로운 발견이 즐거웠습니다.

 

선운사 앞을 흐르는 시냇물을 도솔천이라 한다.

<도솔천을 향해 걷는 명상길>
명상길이 따로 있을 리는 없지만 선운사를 거쳐 도솔산 암자에 이르는 길은 그저 조용히 걷기에 참 좋은 길입니다. 지나치게 가파르지도 비좁지도 않은 길이지요. 더욱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도솔천’이라 부르는 계류가 함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솔천에 아직 살얼음이 끼었습니다. 하지만 하마 살얼음 속 물은 뭇 생명을 품고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도솔천은 욕계, 그러니까 아직 사람들의 욕망이 무성한 세상에 딸린 여섯 하늘 중 네 번째에 속하는 하늘이지요.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인 이곳에서 석가모니도 수행하였고, 미륵보살도 설법을 하고 계시지요. 도솔산(선암산)은 도솔천을 향해 솟은 산이기에 여기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참선하기에 마땅한 절집이란 뜻이 담겨 있겠지요.

도솔천을 향한 명상길은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3대 지장(地藏)성지인 도솔암엔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넉넉하신 지상보살이 빙긋 웃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선운사의 연혁을 간단히 짚어 본다. 백제 위덕왕 24년(537)에 검단 선사가 창건. 신라 진흥왕 창건설도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중수, 조선 성종 때 행호 극유 스님이 중창.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불타고 광해군 때 불사를 일으켜 중수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층 누각의 천왕문을 보았나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시냇물 소리와 담장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천왕문에 닿지만 선운사의 천왕문은 오른편으로 90도 꺾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층 누의 형식이라는 것도 독특합니다. 일층 양쪽엔 사천왕이 지키고 있고, 이층은 범종루이지요. 누 아래를 지나 선문을 들어서게 한 다름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물론 천왕문은 1624년 창건 당시의 것이 아니고 1970년에 건립된 새것입니다. 하지만 글씨만큼은 옛것입니다. 조선의 명필로 이름 높은 원교 이광사가 쓴 ‘천왕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글씨의 획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힘이 넘쳐 살아 꿈틀거리네요.


정면 9칸 측면 2칸의 긴 장방형 건물. 스님들의 강당이다.

<참선의 도량이라더니, 만세루에서 설법을 듣네>
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또 여느 절과 다른 분위기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른 봄이라서 그럴까요? 넓고, 휑합니다. 평지사찰 분위기. 분명 계곡 안에 자리한 절집인데 평지에 앉힌 절집 같아요. 게다가 긴 장방형의 만세루가 버티고 있어 선운사 경내는 수평적인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찰입니다.

첫눈엔 만세루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강당으로 쓰는 건물이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웅보전을 쉽게 찾지 못한 황망함은 건물을 반 바퀴 돌아서야 진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름은 ‘루’이건만 실제로는 낮은 단층 건물이기 때문에 더욱 낯설었지요. 낮은 기단은 마치 시골집 봉당 같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천왕문을 들어서며 마주하는 쪽이 분합창이 달린 만세루의 후면이고 반대쪽의 앞이 벽체 없이 대웅보전을 향해 틔어 있다는 것이죠. 아마 선운사가 강학과 참선의 도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처의 설법을 들으려면 대웅보전을 바라보고 있어야겠지요.

절을 지을 때 남은 부재로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만세루는 정말 휜 기둥에 서로 다른 부재를 이어붙인 재미있는 건물입니다. 심지어 대들보 상부에 있는 종보는 양쪽 끝이 갈라진 나무를 쓴 대신 용머리를 장식하여 최고급 부재를 쓰지 못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또 다른 멋을 창조하네요.

 

선운사의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로 조선 시대의 사찰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절.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기둥 간격도 넓어 규모가 큰 편이다.

<400년 고찰의 멋을 화려한 공포가 받치고 있네>
대웅보전 앞 석축 양쪽에 배롱나무는 특유의 멋진 몸매를 조심스레 자랑하며, 다가올 여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배롱나무 백일홍 꽃이 빛깔로야 동백에 질까요? 그러고 보면 선운사는 가을의 꽃무릇까지, ‘꽃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붉은 꽃들이 절간 가득하겠어요.

그런데 대웅보전엔 꽃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포입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다포계 건축물이에요. 그러니까 기둥 위에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두 줄씩 있어요. 공포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장식이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선운사의 공포는 매우 장식적이지는 않지만 조선 중기의 장식미를 갖추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 눈에 더욱 화려해 보인 것은 아무래도 고졸한 맞배지붕에 화려한 공포로 꾸민 다포집이어서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흔히 처마가 길게 빠지는 팔작지붕 건축에서나 보는 활주까지 대 놓았고, 단청 빛깔은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아름다웠거든요. 사람마다 다른 게 눈에 들어오겠지요? 저는 단순함과 화려함을 대비시켜 놓은 모습이 선운사 대웅보전의 개성이라고 여겨지네요.

그럼, 대웅보전 안에는 어떤 부처님이 계실까요? 분명 석가모니 부처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양쪽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계십니다. 비로자나불은 오른손(불계)이 왼손(중생계)을 감싸 검지 끝을 서로 맞댄 지권인(어떤 이들은 이 수인을 법계정인(法界定印)이라고 함)을 하고 있어요.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미혹과 깨달음도 역시 하나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그렇다고 선운사에서 석가모니부처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옆 영산전과 동백숲 가는 길 팔상전에는 석가여래가 계시니까요.


화강암으로 조각한 고려 시대의 다층탑. 본래 9층이었으나 세 층이 소실되고 지금은 6층탑.

<선운사 중창에 기여한 6층탑>
선운사의 석탑도 이채롭습니다. 탑을 여성의 몸매에 비유하는 것이 불경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미끈한 몸매를 지녔습니다. 높이 6미터이면 결코 낮은 탑은 아닙니다. 큰 키에 하얀 살결을 지닌 미인 같은 탑. 이 고려 탑의 아름다움은 다소 급격한 체감률과 6층 지붕돌 위에 얹힌 복발과 팔각의 귀꽂이형으로 각각 튀어나온 보개에서 더욱 빛을 발하네요.

사적에 따르면 조선 성종 때 폐사지가 된 이곳에 이 9층 석탑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고, 행호 선사가 선운사를 중창하였다고 하니 선운사의 생명을 다시 이은 고마운 탑인 것입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동백숲(사진 문화재청) 

<그래도 선운사는 그리운 동백꽃인가요?>
선운사 동백꽃을 보려면 4월에 가야 하지요. 고창 선운산이 동백꽃 북방 한계선인 까닭에 5월까지도 대웅보전 뒤에 펼쳐진 동백꽃 병풍을 볼 수 있습니다. 500살 먹은 동백은 키로야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의 위용에 못 미치지만 오래 산 나무가 뿜어내는 서늘한 깊이가 숲 전체에 감돌지요.

당연히 이번 선운사행에선 동백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록의 동백나무 잎이 짙푸름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하네요.

붉은 꽃으로 세상을 밝히다가 뚝뚝 송이채 떨어지는 동백꽃. 동백이 피어야만 선운사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동백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요?

 

 천왕문 옆에 딸린 문. 돌과 흙의 섞임. 소박한 담이고, 정겨운 문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절, 선운사>
내려오는 길에 선운사에 얽힌 이야기에 담긴 뜻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선운사 창건과 관련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 중 검단 선사와 도적 떼들의 이야기가 본래 절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옛날 옛적에 여기 도솔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약초도 캐고,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해적들의 약탈로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지요. 그때 나타난 검단 스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염전 일구는 법을 가르치지요. 마을은 점점 풍요로워졌고, 스님은 해적들도 감화시켜 말 그대로 ‘자력갱생’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 과정에 호랑이도 등장하고, 인도에서 파도를 타고 도착한 불상 이야기도 끼어들어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더군요.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과 도적들이 함께 선운사를 짓는 것으로 끝나지요. 그리고 검단 선사는 도솔암 마애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절은 사람들이 선하게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검단 선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신라에 불교를 전해 주었다는 고구려의 스님 묵호자처럼 얼굴빛이 검은 인도 사람이었을까요?

천천히 걷기에 좋은 이 길엔 봄이면 벚꽃도 만발할 것이다.

사실, 이번 선운사 방문은 좀 느닷없고 짧았던 터라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도솔암 지장보살과 마애불, 장사송도 보지 못하였지요. 그래도 도솔천을 끼고 걸었던 조용한 산책의 즐거움이 있었고, 푸른 송죽에 감탄하는 기쁨이 있었지요.

동백꽃이 없는 선운사도 좋습니다. 선운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 가슴에 이미 붉은 동백꽃이 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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