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2 3단원 통일과 민족의 앞날
강원도 철원2편- 의적 임꺽정과 고석정
주춧돌2
철원 땅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 의적 임꺽정'을 볼 수 있답니다.
임꺽정은 백정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임거정'이라고 하는데, 조선조 명종(13대)때 천민은 등과를 할 수 없다는데 절망하고 자신과 비슷한 천민을 모아서 대적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임거정은 함경도에서 내려오는 조공을 훔쳐서 일반 서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의적'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임거정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때 마다 꺽지(우리고유의 민물고기,15-20cm)로 변하여 잡을 수가 없었다 하여 사람들이 '임꺽정' 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철원평야를 가로 지르는 한탄강의 양편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쪽 강가에 10미터 정도의 큰바위가 솟아 있고 그 중간에 3칸 정도의 석굴이 있습니다. 이 석굴을 임꺽정이 본거지로 사용했다 하는데 주변의 물살이 심히 어지럽습니다. 과연, 꺽지로 변하여 물살을 헤치고, 없어졌다는 전설이 마구 진실처럼 들립니다..^^
임꺽정이 출몰하게 된 1559년경은 중종(11대)의 계비였던 문정왕후가 어린 아들 명종을 등에 업고 수렴청정을 하던 때입니다. 12세 때 왕위에 오른 명종을 대신하여 문정왕후와 남동생 윤원형이 온갖 부정부패로 왕보다도 더한 권세를 누리며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윤원형은 정실부인을 독살하고 노비출신이던 정난정을 정경부인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윤원형의 권세를 업은 정난정은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뇌물, 모리 행위로 부를 축척하여 온 나라가 그들의 세도에 눌려 조선사회가 아수라장이었지요.
백성들은 학정과 수탈에 지치고 몇 년간의 흉년까지 겹치자 임꺽정 무리의 의적 행위는 백성의 환호를 받게 되고, 관군으로부터 그들을 숨겨주기도 합니다.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에까지 임꺽정 무리가 출몰하자 조정에서는 각 도에 대장 한명씩을 임명해서 책임지고 도둑을 잡게 합니다.
5도의 군졸들은 임꺽정으로 가장한 가짜를 잡아 파직당하거나 옥에 갇히기도 할 정도로 임꺽정을 잡기위해 애썼지만 번번히 실패 했습니다. 이에, 평안도와 황해도는 양민들이 도둑에게 가담하지 않게 전세를 탕감해 주기도 했습니다.
3년 동안의 임꺽정과 관군 사이의 숨바꼭질 끝에 민가에 숨어있던 임꺽정이 잡혔습니다.
‘기재잡기’에는 “민가에 숨어있던 임꺽정이 ”도둑이야“하고 자신이 뛰어나가 도둑이 달아났다고 소리쳤다. 임꺽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군졸들이 몰려가자, 임꺼정은 군졸들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났다. 그때 서림이 임꺽정이라고 소리쳐서 상처를 입고 생포 되었다”라고 써있는데 잡힌 지 15일 만에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명종실록"에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라고 써 있을 만큼 임꺽정은 단순한 도둑이라기보다는 민심을 대변하는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임꺽정의 활동은 3년 동안 조선의 행정을 마비시키고, 온 나라가 그의 체포에만 열을 올리게 했을 정도이니 그것을 단지 ‘민란’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철원 사람들은 의적 임꺽정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가 수련하던 석굴이 보이는 위치에 ‘고석정’을 지었다 합니다. 그들은 임꺽정이 죽지 않고 꺽지로 변해 아직도 한탄강의 거센 물살을 오르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시대를 앞서 태어나 자신의 처지를 타개하고자 최선을 다했던 그의 모습이 이곳 철원에는 아직 남아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