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온 백제인, <석촌동 백제 고분군> 
                                                                                        글:봄뫼

 

백제 건국설화에, 백제를 세운  온조는 형 비류와 함께 멀리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비류는 미추홀로 가고 온조는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아 나라를 세웠어요. 온조가 세운 나라가 백제라고 하지요.

 그런데  옛날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로 쉽게 믿어버릴 수는 없어요.


벡제의 도성이 한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증명해 주지요. 그러면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왔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증거는 바로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에 있답니다.      

       △소나무숲 뒤로 석촌동 3호분이 보입니다.
한강가의 ‘돌마리’


‘석촌’은 우리말로 하면 ‘돌마리’랍니다.  옛날부터 돌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오랜 세월동안 돌로 쌓은 무덤들이 무너져 그냥 돌무더기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1917년 쯤 일본사람들이 조사할 때만 해도 이곳에는  돌무덤 66기, 흙무덤 23기 등 모두 89기나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산처럼 돌무더기가 쌓인 것이  다섯 개가 있다고 ‘오봉산’이라고도 했다는군요.

 1970년대 이후 잠실 지역을 개발하면서 더 많이 무덤들이 사라졌어요. 뜻있는 사람들이  보호운동을 펼쳐 겨우 지금의 고분군이나마 구해낼 수 있었어요. 이곳이 바로 “석촌동 백제 고분공원”입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찾아가면, 3,4층짜리 집들이 고분공원을 포위하듯  빙 둘러싸고 있어요.

  고분공원은 예전에는 죽은 이들의 휴식을 위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산 사람들이 편안하게 산책하고 쉴 수 있는 곳이 되었어요. 돌을 다듬어서 만든 의자들과 언제봐도 멋진 소나무들이 조화를 이룹니다.

돌무지무덤들


석촌동 백제고분공원에 들어서 공원 정문에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돌무지무덤이  ‘석촌동 3호분’입니다.

3호분은 약 4세기 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데, 남북으로 43.7m, 동서로 55.5m 나 되는 큰 무덤이예요. 30m 길이의 장군총보다 크지요. 3호분은 지금은 3단까지 밖에 안 남았지만 원래는 5단 이상은 되었을 것이라고 하니, 높이도 처음에는 제법 높았을 거예요.

△석촌동 3호분은 원래 높이가 5단 쯤 되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3호분 옆에  크기가 작은 4호분이 있어요.

3호분은 전체가 돌무지인데, 4호분은 겉은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웠답니다. 고구려 돌무지무덤에 있는 지탱석이  4호분에는 잘 세워져 있네요.

 3호분보다 조금 뒤의 시기인 4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석촌동 4호분입니다. 돌무지 계단에 지탱석을 버텨 놓았습니다. 

더 안쪽에  있는 2호분 돌무지무덤이지만  앉은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네요. 아마도 무덤을 만든 시기가 3, 호분과 달랐든지, 아니면 부족이 달랐을지 모릅니다.

 돌무더기로 남아있는 1호분은 뭔가 이상하네요. 무덤 두 개가  연결된 쌍분이군요.

◁석촌동1호분입니다.

또 1호분 옆에  다른 모양의 무덤이 조금 남아있어요. 바깥은 네모나고 안은 둥글게 비어있는 무덤이랍니다.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아마 돌로 네모나게 단을 쌓고 그 위에  흙으로 둥글게 쌓았을 것 같네요.  

◁안은 둥글고 밖은 네모난 모양의 무덤 자리입니다.

 한강가의 고구려인 무덤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이나 똑같지요.

하지만 무덤 양식은 시대와 장소와 종족에 따라 모두 다르답니다.

그래서 무덤을 보면 그 무덤의 주인이 어느 시대, 어떤 민족이고 어떻게 옮겨 살게 되었는지를 추리할 수 있어요.

     △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중 가장 대표적인 장군총입니다.

석촌동 돌무지무덤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국 지안에 있는 고구려 무덤들과 같은 모양이란 점이예요.

고구려 사람은 돌무더기를 계단식으로 쌓아 피라미드처럼 만들었어요. 그 중간에 돌방을 만들어 시신을 모시고 벽화도 그려 넣었어요. 중국 지안의 장군총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석촌동 무덤들이 누구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의 후예일 것이라는 ‘증거’가 된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이곳에는 고구려식의 돌무지무덤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요즘도 많이 보는 낮고 동그란 무덤인 5호분 원형 봉토분도 있어요. 흙을 다져 쌓고 다시 강돌을 쌓은 다음 또 흙을 둥그렇게 덮은 무덤이랍니다.

 땅을 파고 나무관이나 항아리관을 넣었던 토광묘도 있어요.

원래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무덤이었을 겁니다.

△석촌동 1호분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돌아보니 이 석촌동에는 참 여러 가지 무덤이 모여 있군요. 
 여러 무덤 한 가운데 235년 되었다는 회화나무가  서 있습니다. 아슬아슬 남겨진 이 무덤들의  중심을 잡고 있는듯 하네요.

일제시대만 해도 90기 가까운 고분들이 있었다고 하니, 그때만해도 우뚝 우뚝 서 있는 돌무지무덤들 사이에 봉긋한 봉분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너머 너른 한강 가의 기름진 땅에는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어울려 ‘백제’를 이루며 살아갔을 것을 그려봅니다.

◁235살 된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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