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

                                                                                                      글. 하얀 동그라미

우리가 일본의 옛 도시, 교토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교토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 또는 그 지역의 역사를 손쉽게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임머신 없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중앙 분수대 동쪽 문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토요쿠니(풍국)신사가 보여요. 입구부터 높은 계단에 돌문(도리이)이 장대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신사입니다. 풍국이라는 이름을 보더라도 누구를 주인으로 하는 곳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우리 조선반도를 피바다로 만들고 초토화시킨 임진왜란의 주인공,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신으로 모신 신사입니다.

                                        <풍국(토요구니)신사 입구>

                                <신사의  첫 문(일반인은 여기까지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곳 정문에서 건너편 왼쪽으로는 일본특유의 2층 목조주택들 사이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 하나와 시소 하나가 달랑 놓여있는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잡초가 무성한 작고 초라한 공원입니다. 이름하야 "미미츠카(이총 - 귀무덤) 공원"
 
 그 옆에는 둔덕같은 봉우리가 하나 불쑥 솟아있습니다. 위에 5층 석탑이 하나 놓여 있는 것으로 겨우 무덤임을 추측케 하는 흙더미입니다. 바로 임진왜란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미미츠카(귀무덤)'입니다.

                       <귀무덤, 미미츠카>
 
 이 귀무덤을 만든 사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그는 죽은 다음 신으로 추앙받으며 오직 자신 만을 위한 장대한 규모의 신사에 모셔져서 모든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고, 그 앞에서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12만 6천 여명의 조선인의 귀와 코가 묻혀있는 무덤, 미미츠카.

 임진왜란 당시 히데요시는 높고 깊은 오사카성 안에서 하루가 다르게 들려오는 승전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그 승리의 기쁨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조선인들의 목을 가져 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어서 머리만으로도 매일 배를 가득 가득 채워 나가다보니 나중에는 부피가 작은 귀나 코만을 베어서 보내도록 하였답니다.

천하에 나쁜 놈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뭣 할 텐데 죽은 사람의 코와 귀를 베어 내다니요...

먼 뱃길을 따라 오사카까지 가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성능 좋은 조선의 자연산 소금으로 절여서 갔답니다. 한편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 사람의 귀와 코까지 베러가는 왜군들 때문에 겁에 질린 조선의 백성들은 아이가 울면 "이비야(귀와 코를 떼어가는 사람)온다"하는 소리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저항하는 조선 군인들을 비롯하여 조선 민간인들조차 눈에 띄는 대로 귀와 코를 베어와 산처럼 쌓아놓은 히데요시는 그 전리품 앞에서 기념식을 치렀습니다.

12만이 넘는 조선인의 원한이 맺혀있는 귀와 코를 묻어놓고 히데요시는 과연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아니지요. 우리나라가 본래 착한 사람도 많고 착한 도깨비들도 많지만 하루아침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의 원귀들이 히데요시를 그대로 둘리는 없었겠지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 히데요시는 어쩔 수 없이 교토의 방광사(호코지)앞에 지금의 무덤을 만들고 공양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어떤 책에는 17세기 중반 에도시대에 공양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귀무덤이라는 이름은 에도시대 유명한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이라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후 병으로 죽게 된 히데요시는 자신의 승전 기념이 되는 귀무덤 앞에 넓디넓은 신사를 짓고 그 안에서 신으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18세기에 일본에서 간행된 '조선이야기' 속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어요. "조선인들은 이제부터 일본에 올 때마다 이 귀무덤 앞에서 일본의 위력에 무서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고 접할 때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마음에 다시금 분노가 끓어 오르는것과 동시에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슬픔을 간직한 귀무덤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무관심 속에 40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4년, 부산에서 재소자들과 사형수들을 위해 노력하던 삼중스님이 일본을 방문하였다가 그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한국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한국과 일본에서 귀무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양국 정부는 아무런 공식적인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이곳저곳에 탄원을 하고 일본 정부에 요청을 하여 1990년, 겨우 봉분의 흙을 조금 가지고 들어와 경남 사천에 있는 조명군총(임진왜란 당시 순국하신 조선과 명나라 군인의 시신을 모신 무덤)옆에 비석하나 없이 묻어두었다가 2007년에야 사천시와 함께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귀무덤의 혼령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요?

 

                          <교토의 스님과 함께한 사천의 귀무덤 위령비와 위령제>

 전쟁이 끝나고 에도 막부에 의해 일본으로 들어온 조선 통신사들이 에도로 가는 도중에 이곳 귀무덤에 들러 사흘 밤낮을 통곡하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식민지 시대에도 일본에 유학 와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이곳에 와서 눈물의 비밀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우리미래에서도 역사의 현장을 찾아 일본 기행을 하게 되면 귀무덤을 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치신 그분들을 위해 감사의 묵념을 하고 옵니다.

 우리 뿐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 곳을 3대째 지켜주시는 시미즈 할아버지처럼 개인적으로 찾아와 꽃을 바치는 일본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비록 슬픈 역사의 귀무덤이지만 감사와 참회의 마음으로 꽃이 끊어지지 않은 곳이 되어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일본에 가시면 꼭 그곳을 찾아서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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