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와 붉은 해를 삼키는 소백 연봉이 파도치는 바다
글: 하늬바람~
석축 위에 날아갈 듯 지은 안양루와 무량수전. 안양은 ‘극락’, 무량수는 서방극락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일컫는다. 그러니 이곳은 불국정토인 셈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어서 세상의 언어가 부질없을 때가 있지요. 영주 부석사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량수전 앞에 서게 되면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숙연함, 해방감, 자연에 대한 경외 등이 뒤섞여 심지어 망망대해에 떠 있는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중 어지러운 마음이 씻기는 듯 해방감과 고마움이 가장 큰 것일까요? 가슴속에 풀지 못한 숙제거리가 쌓일 때면 부석사를 찾게 됩니다.
마음을 하나로 하여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의미의 일주문. 그러나 부석사 일주문은 새로 세운 듯. 왜냐하면 보통 일주문 밖에 있어야 할 당간이 일주문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해동 화엄 종찰 부석사에 들어서며>
부석사 일주문 가는 길은 가을이 유명합니다.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길이 환하지요. 그러나 겨울 은행나무도 새삼 멋진 구석이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겨울눈을 유심히 본 사람은 참 대단한 눈을 가졌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사실 이유야 몹시 단순하지요. 은행잎은 모아나니 많은 잎사귀를 품은 눈들이 큼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툭툭툭’ 솟아나는 생명력이 12월 늦은 오후의 쓸쓸함을 위로하여 줍니다.
멀리 ‘태백산 부석사’, 안쪽으로 ‘해동화엄종찰’이란 현판을 단 일주문이 수미산에 오르려는 뭇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석사는 화엄경의 으뜸 사찰인 것입니다.
천왕문 못 미쳐 왼쪽에 당간지주가 우뚝 솟아 있다. 높이 4.3미터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혀진 당간지주는 체감률이 특별하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간주를 받는 둥그런 간대. 다음어지지 않는 연꽃무늬 원좌는 자연 그대로의 돌이 주는 맛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이다.
부석사의 석축들은 석등, 석탑 등과 함께 신라 경문왕 때 조성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 대사가 처음 부석사를 창건할 때는 매우 간소한 절집이었을 것이다.
<부석사의 석축은 겸손하라 말하네>
소박한 천왕문을 지나면 이제 수미산 중턱에 자리한 도솔천에 들어선 셈입니다. 사천왕은 수미산의 제석천을 섬기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들이지요.
이들 사천왕의 호위를 받으며 수미산에 오르려면 3단의 큰 석축과 9단의 돌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하품하생부터 상품상생까지 아미타 9품인을 상징하는 계단을 오르면 서방극락 세계의 주인이신 아미타부처를 만날 수 있지요.
그 길에 놓인 석축은 부석사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특히 대석단은 높이가 4.3미터에 길이가 75미터나 되어 시선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석축은 불국사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워 사람의 손길이 미친 듯 안 미친 듯 고졸하게 느껴져요. 큼지막한 돌들을 안정감 있게 배치하고 사이사이엔 작은 돌을 끼웠습니다. 그 자리에 맞게 다듬어 넣은 돌도 있습니다. 허튼 층으로 쌓은 석축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한편 극락세계에 이르는 길이 녹록치 않음 말해 주는 것 같아 겸손할 것을 다지게 됩니다.
측면이 더 긴 건축물. 해서 팔작지붕의 합각이 전면에 있다.
<범종각에서 안양루로, 액자로 보는 극락세계 풍경>
대석단 위에 올라서면 정면 3칸 측면 4칸의 큰 범종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나 범종각까지의 계단이 대석단과 평행한 것은 아니어서 위압감이 누그러집니다. 뉘엿뉘엿 해질 무렵의 범종각에 서서히 노을이 물들어 갑니다. 한결 부드러운 북소리가 울릴 듯하네요. 나무들에도 노란 햇살이 번져 가을 같은 겨울입니다.
범종각 아래 통로에 서면 네모난 창으로 비스듬히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지붕이 보여요. 범종각에서 안양루를 잇는 계단이 30도 정도 꺾이어서 안양루가 바라보는 방향과 범종각이 바라보는 방향이 다릅니다. 뱡향 축이 이렇게 꺾이는 과감한 변화가 마치 굽이치는 인간의 삶과도 같습니다. 어찌 보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도 들게 하지요. 이 또한 절집을 지은 그 누군가가 계획한 것일까요?
높은 석축 위에 걸터앉은 듯한 안양루(安養樓)! 가파른 계단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 이르는 것 같다.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극락정토>
그 가파른 계단과 안양루 누마루 사이로 석등이 보이고 이제 무량수전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아미타여래를 뵙는 영광과 기쁨을 잠시 미루고 안양루에 위로 올라서게 되면 일단은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에 넋이 나가지 않을 수 없네요.
멀리 소백의 연봉들이 붉은 햇살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해 저무는 바닷가에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아요. 해가 수평선 아래로 떨어집니다. 안양의 또 다른 말, 극락! 맞아요, 여기가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이 불국 정토라면, 그 정토에 들어선 것 같은 기쁨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석사 창건에 도움을 준 이는 선묘 낭자이다. 의상을 향한 연모가 이루어지지 않자 의상을 스승으로 삼고 온몸을 던져 의상 대사를 도왔다. 사악한 무리들이 봉황산에 먼저 자리를 잡고 의상의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자 십리나 되는 큰 돌로 변하여 공중에 뜸으로써 그들을 쫓아내었다. 그리고 무량수전 안 아미타부처의 대좌 아래에 머리를, 석등 아래에 꼬리를 두고 누운 부석사 수호 용이 되었다고 한다. 이 단아한 팔각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특히 연화문과 보살상 조각이 아름답다. 국보 제17호이다.
무량수불은 아미타부처의 다른 이름이다. 아미타부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닌 분이다. 이 건물은 고려 정종 9년(1043)에 원융 국사가 부석사를 중건하면서 지은 집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이라지요.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 공민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서 우왕 2년(1376년)에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옛사람의 생각과 숨결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무량수전은 참으로 장엄한 건물입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절집이야 맞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크고 기둥 높이도 높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외목을 빼고도 9량집이나 되는데, 그 큰 집의 지붕물매가 완만하여 더욱 넓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집을 주심포계 기둥이 떠 받쳐요. 주심포란 기둥 위에만 공포를 두는 방식이지요. 대체로 고려 때는 화려한 다포계가 아닌 주심포계 건물을 짓지만, 그럼에도 큰 집의 지붕이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는 까닭은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그리고 배흘림 처리 덕분입니다. 귀솟음은 가장 바깥 기둥의 높이를 안쪽의 기둥보다 높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살짝 기둥 윗부분을 안으로 기울어지도록 안쏠림을 주었는데 안쏠림을 벽면과 공포에까지 주어 앞에서 보면 양쪽이 쳐지기는커녕 상승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기둥을 배흘림으로 처리하면서 기둥머리가 무겁지 않도록 하였지요. 어디 이뿐인가요? 팔작지붕의 추녀를 받치는 높다란 활주는 시원한 청량감까지 선사합니다.
그래서 늘 무량수전 앞에 서면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옛 건물의 장엄함에 경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발 다가서게 됩니다.
화려한 닫집 아래 아미타여래는 협시보살 없이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서방극락 세계를 관장하시기 때문인가? 이 고려 소조불은 높이 2.78미터로 우리나라 소조불 가운데 가장 크다. 그런데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아미타여래의 좌우로 열주가 세 열, 총 6개가 서 있다 보니, 소조불의 크기에도 압도당하지만 깊이감에도 머리 숙이게 된다. 조용히 절로 예를 갖추고 나왔다. 서방극락 세계에 왕생할 만큼 한 일이 없어 부끄럽지만, 보잘 것 없는 이 중생과 주위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를 빌어 보게 된다. (사진:문화재청)
저녁놀에 물드는 소백산 능선을 사진에 다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태백산의 마지막 자락인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석사. 뒷산 갈잎의 노래가 서걱거리는데 무량수전 중정은 다시 석양 속에 적막함이 깊어집니다. 무량수전이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숙연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도 팽팽하게 퍼집니다.
멀리 끝없이 펼쳐진 소백의 연봉이 붉게 젖어들고, 나는 그 안에서 단지 몹시도 유한한 존재라 여겨지는군요. 뒤에 무한한 생명과 광명을 지닌 아미타불이 미소 짓고, 앞에는 겹겹이 이어지는 산봉우리와 능선들이 무한한 무량수의 현존인 양 펼쳐집니다. 그래서 이곳은 ‘안양’이겠지요.
한 해가 가는 12월, 부석사에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무한한 생명과 지혜의 아미타불과 저 산천에 고마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어두워진 산문을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