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땡그라미

오늘은 민주화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조차 구걸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 땅으로 돌아간 날입니다.
그분이 겪으신 일을 신문에서 읽다보면 권력을 위해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한 고문의 다양함과 그 잔혹함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고문을 할때 묶은 것이 칠성판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칠성판이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자연신과 하늘, 그리고 별들을 신으로 모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어머님들이 달 밝은 밤에 맑은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던 신들 중에 북두칠성이 있습니다. 주로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칠성(7개의 별)님으로 부르며 신성시하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인격화되어 칠성(7명의 성인)이 되었지요.

                                                <북두칠성을 모신 칠성각>
                                 

                                                        <일곱명의 성인(칠성)>

해서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관 바닥에 북두칠성을 새긴 판을 먼저 깔고 그 위에다 죽은이의 시신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칠성판 위의 몸은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당연히 죽은 몸이지요.

                                               <관 아래 깔아놓은 칠성판>

27년전 서울역 근처의 남영동의 대공분실 515호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방이었겠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무덤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시체밑에 까는 칠성판에 묶어서 죽음에 대한 심리적 고통과 함께 죽음에 이를만큼의 육체적 고통도 더하였겠지요.. 

"사흘 밤낮없이 이어지던 물고문에 이어 칠성판위에 눕히고 가슴, 허리, 무릎, 발목 등을 혁대로 묶어 손가락과 발가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게 해 놓고 얼굴위에 수건을 덮고 주전자로 물을 부었다" 김근태씨와 함께 고문을 당했던 또 다른 민주화운동가의 회고입니다.


태어나면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타인에 의해 당겨지는 예측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감히 뭐라 말 할수 없을 정도 일것입니다.

예전 일제시대때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일본경찰들도 관을 이용했습니다. 저승에서 편히쉬기위해 뉘어져있는 관이 아니라 고문을 위해 벽에 세워둔 관이라해서 벽관이라 부르는 고문도구로서 말입니다.  일제의 벽관안에는 칠성판대신 사람의 체형에 맞춘 새로운 틀이 역삼각형으로 들어있습니다.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나서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관 안에서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서서히 굳어가는 몸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하는 의도였지요.

얼마전에는 여린 중학생이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물고문까지 당하다 결국에는 자살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잘 잘못을 바르게 청산하지 못하면 그 잘못이 현재까지 당연화되어 지속된다는것을 아프게 느끼는 날들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씨를 말리던 친일의 매국자들이 광복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잡았듯이 27년 전 군부독재를 반대하며 오로지 국민의 민주화를 바라는 한가지 소원밖에 없었던 그분을 죽음에 이를 만큼 고문했던 대한민국의 공무원은 역사의 가벼운 심판 뒤에서 '고문은 예술이다'를 외치며 마지막 조문조차 외면했습니다.
사람, 제일 무서운것이 죽음일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죽음을 담보로 목숨을 협박하는 일은 없는 조금은 편안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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