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시대 면직물 발견!

 글: 하늬바람~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나온 백제 시대 면직물


백제 면직물이 언제, 어디에서 발견되었나요?
사실, 올해 발견된 것은 아니에요. 1999년 능산리 절터 6차 발굴 조사 과정에서 나왔는데, 이번에 국립 부여 박물관에서‘백제 중흥을 꿈꾸다 - 능산리사지’ 특별전을 열면서 그 면직물을 전시하게 되었죠. 그래서 새삼 화제가 된 것입니다.

능산리 사지는 백제금동대향로가 나온 곳으로 유명하죠? 그 능산리사지 서쪽
돌다리의 백제 유적층에서 면직물이 나온 것입니다. 같은 곳에서 나온
‘창왕명사리감’의 제작년도가 서기 567년이니까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다고 알고 있던 그때보다 800년이나 앞선 때예요.
참 놀라운 사실이네요.

문익점은 자신이 가지고 온 목화씨로 재배한 목화솜으로 짠 무명 이전에도 이미 면직물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대답을 듣고 싶네요.

 
백제 면직물이 어떤 건지 궁금해요
폭 2cm, 길이 약12cm 가량의 천이었습니다. 어디에 쓰인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고요. 겨우 손바닥 길이도 안 되는 천 조각이 그리 대단하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고대의 천이 이 정도로 온전하게 발견된 자체도 신기한
일이라고 해요. 게다가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통해 종단면을
관찰한 결과, 식물성 셀룰로오즈 섬유로 짜여진 ‘면’으로 밝혀진 게 획기적인 일이지요. 특이한 것은 실 자체가 스스로 꼬임이 강한 실(위사)로 이런 직조법의 직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보고된 예가 없었답니다. 백제 사람들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지요?

 ▲ 면직물의 세부 사진입니다.

▲ 자체 꼬임이 강한 위사의 모습 

이미 삼국 시대에 면직물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요?
맞아요, 김부식이 쓴《삼국사기》신라본기 경문왕 9년조에 당나라에 올린 물품
중에 ‘백첩포 40필’이 나옵니다. 중국의《한원(翰苑)》이라는 책에서도 고구려
사람들이 백첩포(白疊布)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심지어 푸른색으로
물들인 게 특히 아름답다는 기록이 남아 있네요. 이렇듯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백첩포가 다름 아닌 면직물이라는 거지요. 따라서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신라에서도 면직물을 짜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목화씨의 전래와 무명옷을 입게 된 시기가 바뀌게 되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일단, 백제 면직물은 문익점이 가져온 그 목화와는 다른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아요. 목화에는 크게 인도종과 아프리카종이 있는데, 문익점이
가져온 것은 인도종. 반면 백제 직물은 ‘초면’이라고 하는 아프리카종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아직 그 실체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 해도, 삼국 시대부터 면직물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지요. 가장 오래된 면직물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지금까지는 고려
공민왕 때의,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검정색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던 면직물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어요.
 
삼국 시대 사람들도 따듯한 면옷을 입었을까요?
아마 백성들이 면옷을 입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고요? 백첩포라 부르던
당시의 면직물은 꽤나 값나가는 귀한 옷감이었을 테니까요. 외국에 보내는
그야말로 귀한 직물이었을 터이니 언감생심 옷 지어 입을 마음을 품을 수
있겠어요? 당시 어느 정도나 목화(또는 그와 비슷한 식물)가 생산되었을지는
모르나, 고려에 이르러 조금씩 늘어났을 테고, 문익점이 새로운 목화씨를
가지고 와 비로소 백성들이 면직물의 혜택을 폭넓게 누리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연구가 잘 진행되어 모든 궁금증이 속 시원히 풀리면 좋겠네요. 

 

직접 면직물이 보고 싶다면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시회에 가야죠!
가장 오래된 면직물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백제 중흥을 꿈꾸다 -
능산리사지’ 특별전을
놓치면 안 되겠지요. 더불어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 사이를 거닐며, 백제인의 소박한 듯 독창적인 예술적인 면모를
느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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