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문화 ․ 유적 살펴보기 - 중국



제갈량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살아 숨 쉬는 무후사 (1)

참세상


*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읽는 중국 소설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 후한(後漢) 말에서 삼국시대까지 유비(劉備) ․ 관우(關羽) ․ 장비(張飛)의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어 망해가는 한나라를 바로 잡고자 많은 일을 벌인다는 줄거리죠. 유비는 나중에 촉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유비가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의형제보다는 제갈량(諸葛亮)의 도움이 컸답니다.

 

제갈량이 활약한 삼국시대.


제갈량의 이름 대신 쓰는 자는 공명(孔明)입니다. 낭야(현재 산둥성 린이현)에서 지방 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에게 맡겨졌으나 숙부마저 죽자, 동생과 함께 형주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 됩니다. 제갈량은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학문을 익히면서 지냈어요. 지혜가 뛰어나 널리 그의 명성이 알려져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조(曹操)에게 쫓겨 유비 형제가 형주에 피신해왔습니다. 유비도 제갈량의 알려진 이름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유비는 그를 찾아가 나라를 바로잡을 지혜를 구하려 했지요. 그러나 유비는 세 번째 찾아간 다음에야 제갈량을 만날 수 있었고 제갈량으로부터 많은 지혜를 얻었어요. 유비는 제갈량을 신하로 삼았습니다.


* 사람도 가고 나라도 가고...


그 후, 제갈량은 유비 형제를 도와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어요. 결국 제갈량은 유비가 지금의 쓰촨성 일대를 차지하게 하여 삼국 중 하나인 촉나라를 세우게 했어요. 유비가 죽고 난 후에도 제갈량은 다음 황제가 된 유비의 아들을 도와서 촉나라를 잘 다스렸고 남쪽으로 멀리 영토를 넓혀 갔어요. 제갈량은 조조의 후손이 다스리는 위나라를 정복하려고 군사를 일으켰어요. 그는 끊임없이 북쪽으로 향했지요. 그러나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오장원(五丈原)이란 곳에서 그만 병으로 죽고 맙니다. 제갈량이 죽고 이십여 년 후 촉나라 역시 멸망을 맞이했답니다.               

유비 초상.

제갈량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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