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동그라미

하늘이 너무나 푸른 날 영월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발길 내민 영월은 시작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환영인사를 해 주네요.
너무 멋진 절경에 마음이 홀딱 넘어가버렸습니다..

하지만 청령포에 들러서는 푸른하늘조차 아픔의 색으로 느껴집니다.


태어나서 곧바로 엄마와 사별한 단종은 12살에 즉위를 합니다.
하지만 서슬퍼런 대신들 틈에서 허수아비 왕으로 보내다가 결국은 삼촌에게 왕위마저 빼앗기고
말지요.
자신의 복위운동으로 가까운 친척들, 충성스러운 신하들마저 희생 되는걸 지켜봅니다.
호랑이 같은 삼촌왕 뒤에서 어린 상왕으로 있던 단종은 또다시 복위운동의 희생자가 되어
이곳 영월의 담없는 감옥으로 유배왔습니다.

아버지 문종과 함께 잠들어 있던 엄마 현덕왕후도 삼촌에 의해 시체가 서인으로 강등되고 무덤마저 파헤쳐져 시흥바닷가에 아무렇게나 매장되는걸 봐야했지요.

그러니 멀고 먼 영월땅의 돌아도는 물길에 갇혀 언제 어느때 내려질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그 하루하루가 시간 시간이  얼마나 목을 죄어오는 공포였을까요..
그 무서운 시간을 보내며 하나 둘 던져 만든 돌탑이랍니다.


청령포에 갇혀 외롭고 무서움에 지친 어린 전왕, 노산군의 슬픈 하소연을 들어주었을 관음송이  왠지 더 쓸쓸해 보입니다.
저 키큰 나무아래 앉아 숨죽여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을까요..


관음송 왼쪽 건물은 노산군으로 강등된 왕의 감옥아닌 감옥의 사연으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건물 왼쪽 마루 안쪽 방에는 유배중인 왕을 찾아온 신하가 흰 소복을 입고 절을 하고 있네요.
당시 이곳을 감독하던 호장 엄흥도의 모습이라 합니다.
절을 하는 사람이나 절을 받는 사람이나 가슴이 메여서 서로 볼수 조차 없었을듯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뭐길래 국가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얼마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요.
속으로는 개인적인 욕망이겠지만 명분은 모두 나라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제목을 만듭니다.

세조는 어린 조카가 신권이 강해지는 것을 막지 못해 나라가 위험에 처해진다는 대의명분으로 계유년에 난을 일으켜 왕위를 가져가고 죽어서는 세조라는 묘호까지 얻습니다.
하지만 세조 즉위 후 수없이 저질러지는 단종 주변인물의 숙청을 보면서 저렇게 까지 해야하는게
정치인가, 권력의 유지인가 하는 생각에 그닥 편치않는 마음입니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겨들자 단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도 영월 시내로 나와서 유배생활을
이어갑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관풍헌입니다.
저곳에서 삼촌이 보낸 사약을 마시고 어린 조카는 피를 토하면서 아바마마, 어마마마를 외치다 결국 가쁜 숨결조차 멈추고 말았겠지요.


사소한 보수와 함께 지금은 절집의 일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뒤로 보이는 산세가 마치 불꺼진 초롱불같아서 더 아련합니다.

바로 옆에는 단청고운 누각이 있습니다.
단종이 가슴 조리며 지내던 날들 중에 저녁이면 들려오는 애끓는 소쩍새 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심정을 담아 시를 읊던  자규루입니다.

소쩍새 울음처럼 파르르 떨리는 여리고 가여운 영혼이었겠지요.
비록 몸은 그렇게 속절없이 갔지만 영혼만큼은 영월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듯이 꼭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산속 가족들과 함께 든든하게 살고있기를 바래봅니다.

오늘은 단종의 유배지까지만 보고 다음에 릉으로 가야겠습니다.
아릿한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 청령포 들어갈 때 작지 않는 모터 배를 탔는데 운전하는 사람은 안보이는데 배가 혼자 움직여서 이상하다고 호들갑을 있는대로 다 떨었더니 내릴때쯤 보니까 앞쪽 작은 방에 운전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단종의 한이 서린곳, 청령포 들어가는 길이어서 더 놀랐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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