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땡그라미
모자란 공부가 있어 몇년 전부터 새삼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칠 때마다 궁금하게 있었어요.
50분 또는 70분 시험시간 중에서 언제나 시험 시작 후 20분이 경과해야만 시험장 밖으로 나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원참... 도대체 뭣때문에?
하지만 문제풀다보면 20분은 자연스럽게 넘어가기 때문에 그 순간만 궁금할 뿐 별로 오래 기억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전 신문에 올려주신 성균관대 안대회교수님의 '정조치세어록'에서 그 답을 얻었답니다.
내용인 즉은
" 과거시험의 폐단가운데 답안을 빨리 제출하는 관례를 그대로 놔 둔다면 그 밖의 여러가지 폐단은 모두 자동으로 딸려온다.....(중략)
문체는 세도와 관련된다. 치세의 음악은 평탄하고 완만하며 난세의 음악은 조급하고 빠르다. 요즈음 과거시험 답안은 평탄하고 완만한가, 아니면 조급하고 빠른가...(중략)
올가을 시험부터는 제일 먼저 바치는 시한을 헤아려서 정하고 선비들에게 바뀌지 않을 제도임을 확고하게 주지 시킨다."
1791년(정조 15년) 8월 9일에 대신들에게 내려진 지시입니다.
그러고 보니 200년의 긴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정조임금의 준엄한 명령이 이렇게 살아있네요.
현대에서의 우리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소주가 유행하면...
하는 해석으로 국가 정세를 짐작했는데 과거에는 이렇게 까지 규제를 하면서 난세를 걱정하였군요.
더불어 정조임금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신하를 양성하고자 했던 창덕궁 규장각 사진도 올려봅니다. 임금과 신하가 물과 고기처럼 어울려 멋진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조임금의 뜻이 부용지에서도 느껴집니다.
조선시대, 만백성을 밝게 이끌기 위해 지혜를 겨루었던 조선선비의 과거시험을 재현하는 행사가 올해도 경복궁에서 있었네요.
도포를 입으시고 시험에 임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해 보입니다.
물론 규정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신 분은 안계시겠지요~
모자란 공부가 있어 몇년 전부터 새삼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칠 때마다 궁금하게 있었어요.
50분 또는 70분 시험시간 중에서 언제나 시험 시작 후 20분이 경과해야만 시험장 밖으로 나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원참... 도대체 뭣때문에?
하지만 문제풀다보면 20분은 자연스럽게 넘어가기 때문에 그 순간만 궁금할 뿐 별로 오래 기억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전 신문에 올려주신 성균관대 안대회교수님의 '정조치세어록'에서 그 답을 얻었답니다.
내용인 즉은
" 과거시험의 폐단가운데 답안을 빨리 제출하는 관례를 그대로 놔 둔다면 그 밖의 여러가지 폐단은 모두 자동으로 딸려온다.....(중략)
문체는 세도와 관련된다. 치세의 음악은 평탄하고 완만하며 난세의 음악은 조급하고 빠르다. 요즈음 과거시험 답안은 평탄하고 완만한가, 아니면 조급하고 빠른가...(중략)
올가을 시험부터는 제일 먼저 바치는 시한을 헤아려서 정하고 선비들에게 바뀌지 않을 제도임을 확고하게 주지 시킨다."
1791년(정조 15년) 8월 9일에 대신들에게 내려진 지시입니다.
그러고 보니 200년의 긴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정조임금의 준엄한 명령이 이렇게 살아있네요.
현대에서의 우리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소주가 유행하면...
하는 해석으로 국가 정세를 짐작했는데 과거에는 이렇게 까지 규제를 하면서 난세를 걱정하였군요.
더불어 정조임금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신하를 양성하고자 했던 창덕궁 규장각 사진도 올려봅니다. 임금과 신하가 물과 고기처럼 어울려 멋진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조임금의 뜻이 부용지에서도 느껴집니다.
조선시대, 만백성을 밝게 이끌기 위해 지혜를 겨루었던 조선선비의 과거시험을 재현하는 행사가 올해도 경복궁에서 있었네요.
도포를 입으시고 시험에 임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해 보입니다.
물론 규정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신 분은 안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