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쉬어 가는 절집

 글: 하늬바람~


      나한전에서 내려다본 칠장사 

한여름 마당가에 붉은 빛 맨드라미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길쭉길쭉한 시원한 잎사귀에 묻힌 큼직한 꽃송이는 오히려 촌스러운 듯 소박하게 느껴집니다. 그 꽃밭 언저리 그늘엔 왠지 누렁이 한 마리가 졸고 있는 풍경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찾은 안성 이죽면 칠현산에 자리한 칠장사는 맨드라미 핀 시골집 마당 같은 소박한 사찰이었습니다. 번다하지 않으면서 무게감을 갖춘, 거기에 옛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이야깃거리를 남긴 절집, 첫 대면이 포근하였습니다.

     ▲  안성 칠장사 철당간

보통 사찰에 들어갈 때 당간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 나무나 돌, 철, 금동으로 만든 당간은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거나, 그나마 당간지주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지요. 칠장사는 철당간이 남아 있는 세 곳 중 하나입니다. 직경 50센티미터에 14층짜리 원통 당간으로, 본래는 28층이라니, 높은 창공에 휘날렸을 당(깃발)이 참으로 장했을 것입니다. 철당간으로 유명한 청주 용두사 터의 그것엔 ‘고려 광종 13년(962)’이란 명문이 적혀 있어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칠장사 당간은 명문이 없어 국보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높이 솟은 철당간을 올려다보니 눈이 시원하고, 이제 신성한 수미산 입구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하네요.

 

     ▲ 아담한 천왕문과 사천왕 중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안내판)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은 언덕길입니다. 중간에 큰 주차장이 자리해서 천왕문은 들판에 나앉은 듯 작고 소박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떡 버티고 있는 천왕들은 여느 천왕보다 더 위엄이 있습니다.

천왕이 무엇인가요?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 각 방위을 맡아 부처를 외호하고 불법을 지키는 신장들이지요. 제석천의 명령을 받들어 우리 인간들의 행동을 살피고, 덕으로 감화되지 않는 중생을 힘으로라도 감화시키려는 고마운 신들이지요.

칠장사 천왕 역시 한껏 무장의 기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진흙으로 구운 소조상이라 되어 있네요. 그래서일까요? 갑옷이며 천의며 보관 따위가 섬세하고, 전체로 나무상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쪽의 지국천왕이 푸른색의 낯빛에 칼을 들고 있는데, 이곳 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는 점이 다르군요. 1726년에 조성되었다니 꽤 역사가 깊습니다.

     ▲ 색바랜 단청이 고졸한 대웅전

천왕문을 지나니 바로 요사채를 지나 대웅전 앞입니다. 2005년도에 가져다 놓은 근방 죽림리 삼층 석탑이 고려 전기의 탑답게 단아한 기품으로 서 있습니다. 대웅전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대를 거쳐, 마지막으로 고종 14년에 중건했으니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라 자칫 무게감에 눌릴 것을 다포계공포로 지붕을 끌어올렸습니다. 단청이 색이 바래 희끗희끗하여 오히려 고졸한 멋이 우러납니다. 비바람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에 감정이입이 절로 이루어집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수수하니 어울릴 것 같은 이의 모습입니다.

배흘림으로 다듬어진 기둥은 또 어떤가요? 개심사 심검당처럼 아예 휘어진 기둥은 아니지만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를 그저 주어진 대로 살려서 썼다는 기둥도 역시 대웅전 규모에 맞게 소박하더군요.

     ▲ 봉업사지에서 가져온 석불입상

대웅전 오른편으로 본디 이 절집의 것이 아닌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죽산리 봉업사지에 있던 석불인데 죽산 중고등학교 교정에서 홀대받다 칠장사로 오게 된 부처이지요. 보물 제988호로 지정된 서있는 이 부처는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8세기에 조각된,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 양식입니다. 눈, 코가 몹시 마모되었지만 뛰어난 석공의 솜씨라는 걸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자락과 몸의 곡선미에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두광 안에 3기의 화불과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광의 화염문도 아름답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빛에 마음속 묵은 고민들의 해답을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한 칸 건물 나한전과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소나무. 

칠장사의 독특한 배치 중에 하나는 나한전이 산신각이 있는 저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조사당과 같다고나 할까요. 하긴 그렇습니다. 칠장사 나한전은 우리가 알던 석가의 16수행제자였던 아라한들이 주인이 아니고, 사실 이 절을 창건한 것과 다름없는 혜소국사와 그에게 감화 받아 깨달음을 얻게 된 일곱 명의 도적들이 주인이니까요.

법명이 정현(鼎賢)이었던 혜소국사는 안성 땅에서 난 고승이었습니다. 고려 문종의 왕사로 있다 마지막엔 국사로 존경을 받았지요. 그러던 혜소가 이곳에 머물 때 일곱 도적을 부처의 길로 이끈 일이 있었습니다.

칠장사 근동에서 행패를 부리던 도적들이 물을 마시러 왔다가 각자 금바가지를 주워 갔지요. 하지만 돌아가 보면 금바가지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어요. 일곱 도적은 이 모든 것이 혜소국사의 신통력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곱 도적은 혜소국사가 가부좌로 열반에 들자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16수행제자가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들은 그들이 바로 ‘나한’이라 생각했지요. 칠장사를 찾은 대각국사 의천은 ‘혜소국사는 부처와 다름없다’고까지 하였지요. 하여 칠장사 나한전엔 혜소국사를 중심으로 나한이 된 일곱 도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해서 아미산이라 불리던 산은 칠현산이 되고 칠장사(漆長寺)의 ‘칠’이 일곱‘七’로 바뀌었으니, 나한전의 유래가 절의 유래가 되어 버렸네요.

   ▲ 비와 귀부와 이수가 차례로 따로 놓여져 있습니다. 두 마리 용이 구름 속에서 뒤엉켜 있는 이수의 조각은 힘차면서 섬세하고, 귀부의 얼굴은 벌름거리는 코를 강조해서인지 다소 익살스럽습니다.

            ▲ 혜소국사의 행적을 담은 3.48미터의 비로, 고려 문종 14년에 세워졌습니다. 

혜소국사의 비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안성 땅 칠장사까지 쳐들어오자 한 노승이 나타나 꾸짖었죠. 화가 난 가토가 그 노승을 치니 노인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가토가 칠장사가 있던 죽산을 지나 한양을 거쳐 함경도 일대로 올라갔고, 칠장사와 가까운 죽주산성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으니, 가토를 물리치고자 하는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이 이와 같은 이야기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명부전 벽엔 다른 절과 달리 이 절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벽화로 남겨 놓았습니다.

      신라 헌안왕의 서자였던 궁예는 10살까지 칠장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혜소국사의 계도를 받는 일곱 도적과 불성을 얻은 그들이 모셔진 나한전의 모습

 칠장사는 영창대군을 잃은 한 많은 어미이기도 했던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의 위패를 모신 원당으로 삼은 절이기도 합니다.『금광명최승왕경』을 해마다 1권씩 10권을 사경하며 험한 마을을 달랬다지요. 국보 296호로 지정된 ‘오불회괘불탱’도 인목대비가 내렸습니다. 사월초파일에 탱기석(괘불대)에 걸어 야단법석을 하는 모습입니다.

 

     ▲ 병해대사를 가운데로 하여 임꺽정과 일곱 의형제가 다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염천의 더위에 칠장사를 찾았던 것은 사실 임꺽정에 이끌려서입니다. 소설 『임꺽정』에 백정이 중이 되어 생불처럼 존경받던 꺽정이의 스승 병해대사가 칠장사에서 입적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해대사는 고리백정으로 갖바치로, 그리고 백정 중으로 일생을 천대 속에 보냈지만 성불하여 소도바(탑)에 한줌 재로 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임꺽정이 안성 옥에 갇힌 막봉이를 빼내려 모의하던 중, 스승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스승을 목불상으로 만들어 모시는 장면이었지요. 그 목불상 앞에서 일곱 의형제가 결의를 맺으니, 이 대목에서 혜소국사와 일곱 도적 얘기가 겹쳐지네요.

그런데 ‘안성맞춤’할 때 꼽는 것이 유기와 가죽신이고, 가죽신 짓는 법을 병해대사가 전수했다니, 어디까지 실제이고 소설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꺽정은 소설과 실제를 혼동하게 만드는 묘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종실록』에선 방화와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벽초 홍명희의 소설을 통해 의적으로 거듭났지요.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다 다시 출간한 때가 1985년 8월이었습니다. 벽초와 임꺽정과 나 자신이 일체가 되어 한 권씩 나올 적마다 기다려 읽던 밤들이 그리웠습니다.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열정으로 이끌던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토속어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책이기도 했지요. 병해대사와 꺽정의 흔적이 어느 구석엔가 숨 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소 만화 같은 벽화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조차도 반갑네요.

칠장사는 큰 절이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 절 냄새 나는 사찰입니다. 나오는 길에 누각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옛이야기와 더불어 쉬어 가도 좋은 그런 절집입니다.

    단풍 든 칠장사의 전경. 계절을 앞당겨 더위를 잠시 잊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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