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1학기 사회 p18 장보고

 

 

 

더 멀리 바다로

 

 참세상

 

신라시대의 배

고국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당시 신라 국왕인 흥덕왕(興德王)을 만났어요. 그는 왕에게 해적 소탕을 위한 청해진 설치와 군사 동원을 요청했답니다. 장보고는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에 임명되었고 고향 청해진에 군영을 설치하였어요. 해적 소탕과 교역로 개척에 나서게 된 그는 1만 여 군사를 몰아 해적들을 남김없이 소탕했어요. 해적들이 소탕되면서 신라 서남해안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어요. 장보고는 더 나아가 신라와 중국 및 일본을 잇는 교역로까지 개척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청해진을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하는 해상 루트가 만들어져 외교사절과 상인들은 안전한 항해를 보장받게 되었답니다.



장보고는 외교가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어요. 일본의 관리가 청해진에 자국의 승려 엔닌(圓仁)의 중국 유학길을 보살펴 줄 것을 청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보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죠. 또한 중국에 사찰을 세워 고국을 떠나 이주해 있던 수많은 신라인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보호해주었죠. 그리고 자신이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기 때문에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일을 맡겼답니다.

엔닌 스님, 그의 일기에 장보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상으로 장보고의 파란만장한 삶을 되짚어봤습니다. 그는 위대한 군인이었고 뛰어난 상인이었습니다. 해적 소탕을 위해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과 중국의 산둥 반도를 주 무대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최초의 해상 교역로를 형성합니다. 이것을 통해 동아시아는 하나가 되었어요. 해양 교류사에 있어서 보기 드문 역사적 사실입니다. 비록 장보고의 삶이 그동안 오랫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었으나, 그의 해양활동은 800년이 흐른 지금도 교훈이 되는 업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장보고의 무역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다길이 막히고 해양진출이 부진할 때 나라의 기운이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구한말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와의 접촉을 두려워하여 바다의 문을 닫아걸었죠. 결국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만 것입니다. 어쩌면 역사적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보고 기념탑(완도)

1천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중국 대륙 곳곳에는 신라인들의 숨결과 장보고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장보고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대단한 것이라는 이야기죠. 그는 진취적인 위대한 한국인의 원형이에요. 포기할 줄 모르는 강인한 정신력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쫓아야 할 소중한 우리의 자산입니다.

지난 세기 바다를 포기해 식민지가 된 뼈아픈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바다를 주목하게 했어요. 조선술을 발전시켜 세계적 해운국으로, 무역국으로 발돋움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바야흐로 21세기 5대양 6대주를 누벼야 살 수 있는 바다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도 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죠. 오늘날 장보고가 누구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곧 미래의 영광을 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2위 무역국으로 드날린 것도, 나아가서 앞으로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강국으로서 발돋움하게 될 미래도 멀리 너른 바다를 나가 꿈을 펼친 선조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렇듯 해양 강국 ․ 문화 강국으로서의 도전은 못다 이룬 장보고의 마지막 꿈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 우리미래의 한국사 실내수업은 ppt를 활용한 시청각 자료와 함께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www.woorimir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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