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사회 6-1 민족을 통일한 고려 / 중학교 국사 고려의 발전

옆모습이 아름다운 부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

                                                                                                         글  하늬바람~

 

봄을 재촉하는 경칩 봄비에 ‘대적광전’ 현판을 단 아담한 절집이 더욱 고즈넉해 보입니다.
아, 저 안에 9세기의 대표 철불로 유명한 비로자나부처님(국보 63호)이 계시겠지?



여느 대좌와 달리 철로 만든 대좌 위에 비로자나불이 앉아 미소를 짓고 있네요. 크기는 상상과 달리 우람하지는 않았습니다. 높이가 91㎝였습니다.

유홍준은 ‘도전적이고 씩씩하며 개성적’이라고 하였지만 내게는 당장이라도 작은 입술을 벌려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다정한 청년 같이 느껴졌습니다. 앞에서 볼 땐 낮아 약간 촌스럽던 코가 옆에서 보니 오뚝하니 “야, 이거 완전 F4 부처님 아냐?” 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확실히 석굴암 부처의 완벽미와는 다른 개성 만점 옆모습이 아름다운 부처입니다.

도피안사의 철불은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철불 뒷면에 명문(100여 자)이 있어 조성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지요.
본래는 철원 안양사에 봉안하려 했는데 운반 도중 사라져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척 앉아 계신 걸 발견하고, 도산국사가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9세기는 신라 하대로 이미 신라의 귀족들은 왕위쟁탈에 여념이 없고 백성들은 굶주리는 혼란기였지요. 지방에선 지방호족을 중심으로 뭉칠 때로 불교의 선종이 유행하였어요. 그리고 밀교적 분위기가 팽배해 대광명을 온 천지에 비추실 비로자나불이 받들어졌지요. 백성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절대자의 모습을 철불로 만드는 게 유행이기도 했습니다.(금동불보다 값이 싸겠죠?^^)


그런 의미에서 도피안사의 비로자나불은 1500여 향도들이 모여 만든 철원 지방 호족의 이상적 모습일 것입니다. 이미 백성들은 예술가적 솜씨로 완벽하게 조각한 귀족들의 부처님이 아닌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소박한 부처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혼란기에는 다소 낭만적이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추구하게 되는 법이죠. 도피안사의 비로자나불도 바로 그런 사회의 흐름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방 향도들의 작품인지라 몸에 굴곡이 잘 살아 있지 않고 옷 주름은 간격이 일정한 것이 작품성이 떨어지는 면은 있지요.




지금 우리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부처님은 철불로 검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금칠을 하고 있어 천박성 논란이 있었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원래는 조개껍데기를 태워 만든 회분가루를 입혀 번쩍거리지 않는 금색을 띠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철 본연의 이 모습도 충분히 울림을 주는데…….


피안의 평안을 잠시 꿈꾸는 사람이라면 비 내리는 쓸쓸한 도피안사에서 비로자나불을 마주한다면 그 느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찾아가 보길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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