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2학기 _ 세계문화유산

고려대장경 - 팔만대장경의 완성

글 : COSMOS


우리의 문화유산 중 팔만대장경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거예요.
해인사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장경판전 안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우리의 자랑스런 유물이지요.
제작된 지 무려 750 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활용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점도 그렇고 그 수량구양순 서체로 된 글자체의 완벽한 일체감오자, 탈자 없는 꼼꼼함이 오늘날에도 감탄을 자아낸다고 하죠.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시대 외적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보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제작되었다는 이 팔만대장경이 그 이전의 축적된 대장경 제작의 완결판이라는 점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고려 현종 임금 때 거란의 침입을 받아 수도 개경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게 되었어요. 이때 태조 이래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 고려 왕조는 이 위기를 부처님의 법력으로 극복하고자 했어요.

그 이전에도 난세에 사람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이나 형상의 요란함과 무서움에 기대는 마리지천에 의지하고자 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고려의 불교적 색채가 대장경 제작이라는 방법을 생각해낸 거죠.

이때 처음으로 대장경 제작의 사업에 착수하여 <초조고려대장경>을 완성합니다. 그 덕이었는지 거란은 개경을 점령하고도 고려의 저항을 이기지못하고 스스로 물러납니다.

그 후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좀 더 보완된 <속장경>의 제작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고려의 보물들이 몽골의 침입으로 왕조가 강화도로 옮겨 갔을 때 모두 불타버리게 된답니다.

고려의 보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었던 고려의 대장경을 불태운 적장 살리타이가 김윤후와의 처인성 싸움에서 눈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되는 것에서 대장경을 불태운 죄 값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소실은 고려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대장경 제작의 필요를 느끼게 하지요.

강화도 천도 시기 약 40년 동안 고려왕조는 심혈을 기울여 16년에 걸쳐 대장경을 제작하게 되는데 바로 팔만대장경의 완성이지요.

팔만대장경판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벌채하여 바닷물에 담그고 쪄서 그늘에 말린 후 표면을 다듬어 경판을 준비하고 청동의 얇은 판으로 모서리를 고정하였답니다. 틀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세상을 살면서 받는 8만4천의 번뇌가 새겨진 속칭 팔만대장경은 다시 만들어져 <고려재조대장경판>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정식 명칭은 <해인사 고려대장도감판>으로 국보 32호로 되어 있죠.

이 경판들이 강화도에서 제작되어 지천사를 거쳐 해인사로 옮겨지는 과정에 대한 거대 역사의 궁금증과 함께 현재 보관 위치의 선정, 장경판전의 과학적 설계 등은 팔만대장경을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답니다.
이제 우리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보관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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