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황룡사 터에서 옛 절의 흔적 찾기

 

                                                                                                     글쓴이  하늬바람~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습니다. 내 발 디딘 곳 어디든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지만 경주는 갈 때마다 감동을 주는 진정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도(古都)입니다. 이번엔 해질녘의 황룡사가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주에 올 때마다 그냥 지나쳤던 황룡사 터, 그동안 왜 무심히 지나쳤든가 후회가 밀려오고 또 밀려왔습니다. 


황룡사는 신라 최대의 사찰이었지요. 진흥왕이 황룡 꿈을 꾸고 궁궐을 지으려다 절을 짓게 되었다지요.(진흥왕 14년 553년) 하지만 진흥왕대에 공사가 끝난 게 아니라 93년에 걸쳐 완성이 되었다네요. 고려 원나라 침입으로 불타 지금은 그 흔적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함께 간 어린 동무들과 어스름 황룡사 터 뒤편에서 보물찾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보물은 금동삼존장륙존상이 있던 대좌와 황룡사 9층 목탑의 주춧돌이었지요. 열심히 너른 들판을 달렸습니다.

 



세 개가 나란히! 참말이지 대좌의 크기가 컸습니다. 특히 본존불의 광배가 놓였던 자리에 큼직한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어서 앉으니 불경스럽게도 푸세식 변기가 놓인 듯하여 한참이나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빛 광배를 어찌 함부로 생각하겠어요. 다만 어린 동무들이 그 모양 오래오래 기억하라는 뜻이지요. 오랜 세월을 견뎌 높이가 4.8미터나 되었다는 불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륙존상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인도의 아소카 왕이 만들려다 실패하여 신라에 금과 동을 보내니 신라 사람들은 뚝딱 단번에 완성하였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왜? 아소카 왕은 기원 전 3세기 사람이고 진흥왕은 6세기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까닭은 그만큼 금동장륙존상이 크고 보통의 정성이 아니면 만들기 어려웠을 거라는 걸 말하는 거겠지요.



금동장륙존상 대좌 앞쪽에서 황룡사 9층 목탑(645년)의 흔적도 발견했습니다. 가운데 두세 명이 감싸 안아야 할 정도로 큼직한 중심초석이 서 있네요. 황룡사 탑을 짓던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가 백제가 멸망할 꿈을 꾸고 돌아가려 하자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어두워지더니 노승과 거인이 나타나 ‘꽝’하고 중심기둥을 세우고 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그 중심기둥이 서 있던 초석(주춧돌)을 보니 참 크기도 하거니와 옛 사람 아비지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주춧돌이 모두 몇 개나 되나 일일이 세어 본 친구도 있습니다.

-선생님, 전부 64개예요


그렇습니다. 8개씩 8줄 64개입니다. 주춧돌의 개수가 그 정도니 정말 얼마나 컸겠습니까? 높이 80미터로 현대식 건물 30층에 가깝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나는 신라 사람이 되어 신라의 돌과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눕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기껍게 살아가는 신라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녁 무렵의 황룡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느낌을 온몸에 새겨주네요. 그리고 보물찾기에 성공한 우리는 세상의 숨겨진 비밀을 나만이 안 것처럼 즐겁게 돌아옵니다.

                                                        관련 교과: 초등 사회과탐구 6-1 17쪽, 중학 국사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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