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와 유채꽃 넘실대는 섬, 청산도(靑山島) 예찬(2)

글: 하늬바람~

 

 

가운데 네모난 통수로는 물을 담고 흘려보내는 수로이다. 구들장논은 부흥리와 양중리에 주로 남아 있다. 위 구들장논은 긴꼬리투구새우가 산다는 상서리의 논(전시장 패널)을 찍은 것이다.

 

<청산도에서는 논에도 구들을 깔았다>

구들장논이란 말을 들어보았나요? 청산도에 와서 세상에 그런 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본래 구들은 불기운이 지나가는 고래 위에 판판한 돌을 깔아 방을 덥히는 걸 말하는데 구들장으로 어떻게 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구들장과 농경문화의 접합?

 

청산도에 논이 부족했을 거라는 건 다랭이논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청산도 사람들은 평평한 돌을 쌓아 흙을 덮고 물을 가두어 논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 뼘의 논이라도 확보하려는 청산도 주민의 간절한 마음을 구들장논에서 느낄 수 있군요.

 

 

 

어미 범이 뒤따라오는 새끼 범을 돌아보는 모습처럼 생겨서 범바위. 청산도에 살던 호랑이가 여기 범바위를 향해 “어흥”하고 포효하니 아마 메아리가 되어 소리가 크게 울렸던 듯. 그 소리에 놀란 호랑이는 청산도를 떠났고, 그 후론 청산도에 호랑이가 살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청산 제일 전망>

상서리에서 만난 한 스님 안내자의 말. 청산도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은 항도와 범바위죠. 그러면서 범바위로 가는 지름길을 일러 주었습니다. 8코스 해맞이길로 해서 도청항까지 섬 반 바퀴를 걸으려던 계획을 버리고 범바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원동리, 청계리 들에는 띄엄띄엄 일하는 아주머니들뿐 적막하고, 간간이 내리는 봄비와 바람이 뒤섞여 날은 살짝 후텁지근합니다. 구불구불 들길은 어느새 보적산 산길로 접어들고 8부 능선쯤에 우뚝 솟은 범바위에 도착. 과연 범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참으로 장하였습니다. 비 내린 뒤라 남쪽 바다에는 작은 무인도 상도만 보일 뿐이었지만, 거문도는 물론 제주도도 보일 맑은 날의 바다가 저절로 연상되었습니다. 북쪽 아래로는 청산도의 여러 마을이 빨강, 파랑 지붕을 이고 평화롭게 자리한 모습. 집, 밭, 논, 길, 산, 바다, 사람 모든 것이 그냥 자연이구나. 청산이구나.

 

 

범바위에서 내려가니 권덕리 포구가 보인다.

 

사실, 범바위는 흔한 지명. 그런데 청산도 사람들이 범바위를 신성하게 여기는 까닭은 범바위 앞바다에서 나침반이 빙글빙글 도는 등 자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그럼, 아무래도 뜻밖의 신비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을 테지요.

 

 

 

낭길 끝지점의 시계. 시작점에도 같은 시계가 있다.

 

<바다와 함께 나란히 걷는 낭길>

항도로 길을 잡기에는 남은 시간이 빠듯하여 권덕리로 내려가 낭길(4코스)까지 거꾸로 걷기로 합니다. 낭길의 끝과 시작점에 설치해둔 시계. 시간을 잊고 천천히 걸으라는 의미겠지요. 낭떠러지 길이라 낭길, 청산도 남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하여 낭떠러지가 쭉 이어집니다. 저 아래 푸른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을 감상하자면 천천히 갈 수밖에. 게다가 낭떠러지이니 걸음은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곳곳에 각시붓꽃이 피어 걷는 길이 더욱 상쾌합니다.

 

 

 

 

중간에 따순기미를 지납니다. 기미가 뭘까? 청산도엔 유난히 장기미, 오천기미, 따순기미 등 ‘기미’란 지명이 많더군요. 청산도 여성 택시 기사는 기미가 일본말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무래도 기미는 구미가 변한 말인 듯. 구미는 바닷가나 강가의 곶이 길게 뻗고 후미지게 휘어진 곳을 일컫는 북한말로 한자말로는 만(灣). 어떤 이는 따순기미를 따듯한 양지 땅이라고도 하네요.

 

 

 

안면도 방풍림만큼이나 우람한 소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청산중학교에서 도청항 옛 골목인 안통길로 이어지는 동네 골목은 돌담과 벽화가 어우러져 발길을 이끈다.

 

<청보리 푸른 언덕이 그리울 것이다, 청산도여 안녕!>

청산도의 마지막은 지리 해변에서 도청항까지 걷기. 지리 청송 해변의 소나무 방풍림이 장관이긴 했으나 도청항의 미로길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여느 마을처럼 돌담이 미로처럼 나 있는 그런 골목길. 그러다 군데군데 멋진 벽화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마치 길손에게 주는 선물 같아요. 미로 속의 보물찾기 하는 느낌. 동백꽃을 꽂은 황소, 천천히 기어가는 달팽이, 왠지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떠오르는 담쟁이덩굴……. 사진기에 달랑 남은 그림은 ‘오줌 누는 멍멍이’뿐. 슬며시 웃게 되는 그림입니다. 동네 자체가 야외 미술관인 도청항의 미로길과 안통길. 벌써 그곳이 그리워집니다.

 

 

 

청산도의 옛 이름이 선산(仙山), 선원(仙原)이었다지요.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신선이 살았겠습니까. 청산의 언덕에 서 있어본 이라면 그 이름이 정당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바람결에 물결치던 보리밭이 가슴 속에서 피리를 불 것입니다. 유채꽃이 온 마음을 노랗게 물들이겠지요. 푸른 바다를 품은 작은 포구들이 그리울 것입니다.

청산도에 오니 ‘청산’은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청산에도 ‘흙먼지 이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존재하겠지요. 그럼에도 삶의 애환도 넉넉히 품어버릴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 그 자체가 바로 청산이었던 것입니다.

청산도를 찾아온 많은 이들이 청산을 품고 돌아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청산도는 “봄 언덕 고향” 같은 진정 ‘청산’이었습니다.

 

 

다시 찾고 싶은 청산도 도청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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