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와 유채꽃 넘실대는 섬, 청산도(靑山島) 예찬(1)

글: 하늬바람~

 

 

 

밭에는 청보리가 물결치고 점점이 하얀 완두콩 꽃이 피어나는 밭 아래 둥그런 바닷가에 곰솔이 바람을 막고 있다. 어머니 자궁 같은 포근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서울에서 청산도 가는 길은 역시 멀었습니다. 8시 10분 서울 출발, 완도에서 배 타는 시간까지 6시간 30분. 청산도 도청항에 내린 건 오후 3시 30분경. 세계슬로길 1호로 지정된 섬에 도착했다는 감격으로 도청항을 둘러봅니다. 아담한 항구. 오른쪽으로 도락리 마을이 보이고 당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시선을 차단하네요. 고개 저 너머에 청산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군요.

하지만 청산이란 단어는 아직 관조의 느낌. 그 비현실성에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마음이 한가로운 이백의 푸른 산이 내겐 만져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때는 고개 너머에 펼쳐질 청산의 봄을 아직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탈 밭 청보리는 생명이 넘쳐나고, 파랑 ․ 빨강 지붕은 지중해의 한 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전통의 농촌 풍경과 이국적인 전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채꽃에 물든 마음아, 정겨운 마을아>

도락리에 짐을 풀고 마을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가니 양쪽에 빨강과 파랑, 두 마을의 지붕이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도락리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작은 부락이고, 당리는 청산진성 아래 비탈에 자리한 마을. 슬로길 1코스인 이 언덕은 영화 서편제를 촬영한 돌담길로 유명하죠. 낮은 돌담 사이의 황톳길을 소리꾼 유봉과 송화, 그리고 오라비와 다름없던 동호가 덩실덩실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길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장을 한 탓인지 유봉과 송화의 애환은 아련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지척에 유채꽃 밭 사이로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다는 하얀 이층집이 생뚱맞게 서 있어 어느 새 유명세는 그쪽으로 넘어간 듯싶더군요. 그래도 유채꽃 밭에 앉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웃던 우리들의 마음에도 노란 봄이 찾아듭니다. 언덕 아래 파란 지붕, 빨간 지붕 낮게 인 집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마을길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립니다. 아, 이래서 청산이라고 하는구나.

 

유채꽃 뒤 하얀 이층집은 드라마 ‘봄의 왈츠’와 ‘여인의 향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전에 ‘서편제’를 촬영한 돌담길도 볼 수 있었다.

 

 

2코스 사랑길을 거꾸로 걷다보니 왼쪽으로 화랑포 새땅끝 길(1코스)이 보인다. 화랑포는 온전히 바다와 마주하는 청산도의 서쪽 끝이다.

 

<이정표를 잃어도 길은 바다와 만났다>

다랭이논이 아닌 다랭이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니 당리재 삼거리였습니다. 화랑포길(1코스)을 가려 했던 것인데 그만 사랑길(2코스) 중간쯤에 닿은 것이지요. 잠시 망설이다가 화랑포 쪽으로 거꾸로 걷기로 합니다. 걷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정표대로 가지 않는다 해도 길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감동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자신의 속살을 날것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것이 걷는 이들의 행복이겠지요.

 

기분 좋게 걷던 솔숲 끝에 다소 거친 돌길이 나타났습니다. 길은 바다로 바다로 이어져 가슴 가득 바다향이 그득합니다. 2코스의 이름을 사랑길이라 한 까닭은 손을 잡아주며 걸어야 할 만큼 돌길이 이어지기 때문. 바다가 눈 아래 펼쳐지는 낭떠러지 길을 연인이 걷는다면 사랑이 싹틀 수밖에 없겠지요.

 

 

 

청산진성은 고종 때 축조한 성이다.

 

<청산진성, 섬의 역사를 톱아보는 성벽 길>

화랑포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서편제 언덕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첫날 걷기를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 아쉬워 당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들, 저녁을 준비하는 집……. 낮은 지붕에 낮은 담장 사이로 난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청산진성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렀습니다. 새로 복원한 성벽이란 티가 나네요.

 

도청항에서 당리로 넘어오는 고개 옆으로 당리를 병풍처럼 두른 반달 모양의 성벽이 있어 그 정체가 궁금하던 차. 아, 여기가 청산진성이었구나. 섬인데 왜 성을 쌓았을까? 이 아름다운 섬에도 전란이 있었나? 찾아보니, 그리 오래된 성은 아니었습니다. 청산진성은 고종 3년(1866년)에 청산도에 첨사진(僉使鎭)이 설치되면서 쌓았습니다. 진의 높이가 15척(4.5m) 길이가 10리(4km)로 규모가 제법 되는 성이더군요. 문은 동, 서, 남에 세 곳. 군사는 420여명 정도. 성 안 호구 수는 약 460여 호. 인구는 약 2000여명(남1465명, 여1150명). 여전히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필요했기 때문에 성을 축조했을 테지요.

 

 

청산진성 부근 청보리밭.  

 

이전의 역사를 간략히 옮겨 봅니다.

청산도엔 신라시대부터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 기록은 없음.

하지만 고려 때 탐진(강진)현에 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고려 때는 분명 사람이 살았던 섬.

삼별초가 몽골에 항전할 때 근거지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근거는 희박.

역사는 훌쩍 조선으로 넘어가, 임진왜란 후 조선 조정이 도서금주령을 내려 주민들은 청산도를 떠남.

선조 41년(1608)에 다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

숙종 7년(1681) 수군 만호진을 설치. 이는 군사적으로 중요했다는 뜻.

그 후 고종 때 청산진성을 축조하고 완도군으로 편입.

그러고 보니 청산도 사람들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벽에 올라서니 또 한 번 이곳이 청산임을 알겠습니다. 느긋하게 저녁을 준비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오직 해거름에 검기울어 가는 청산의 정경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읍리 고인돌 3기(사진: 문화재청)

 

<버스 차창가로 고인돌을 마주치다>

둘째 날, 청산도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돌아가는 일정을 앞당긴 터라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명색이 걷는 여행을 한다고 왔는데, 시간이 부족해진 탓입니다. 청산도는 국제 슬로시티 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1호로 지정된 곳인데…… 여유를 찾아야 할 곳에 와서 걷는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직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네요.

 

아니나 다를까요? 옛 돌담장 마을로 알려진 상서리에서 출발하여 섬 반 바퀴를 걷기로 하고 마을버스를 탔는데, 당리를 지나 읍리로 들어섰는데 길가에 고인돌 3기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마 혼자 여행을 왔다면 주저 없이 내렸을 테지요. 함께 여행 온 친구들이 걸려서, 또 오늘의 목표에 매여 차창으로만 보고 지나쳤습니다.

 

 

 

 

읍리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도 부르는 바둑판식 고인돌입니다. 땅속에 돌방이 있는……. 보기에도 가장 큰 것은 받침돌이 덮개돌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덮개돌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특이한 고인돌도 눈에 띄었습니다. 덮개돌과 받침돌 사이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편평한 돌을 끼워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 저건 덮개돌이 두 개로군. 그렇게 생각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덮개돌을 네모반듯하게 잘 다듬어 올려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본래 청산도에는 남방식 고인돌이 23기가 있었고 읍리에는 16기가 있었는데 새로 도로가 나면서 다 없어지고 3기만 저렇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창, 화순 등 전라도 땅에 원래 고인돌이 많긴 하지만 청산도 같은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 고인돌이 있다니 그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청산도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자꾸 당시의 지리 환경이 궁금해집니다.

 

 

 

오른쪽 나무살 창문은 외양간이다.  

 

<상서리 옛 담장, 섬이기에 돌로 담장을 둘렀다>

마을버스의 종점은 상서리 마을회관 앞입니다. 봄비가 후두둑. 청산도는 제주도처럼 돌이 흔해서 돌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섬이라 바람에 강한 돌담을 만들었을 터. 온 섬이 돌담을 두른 집들이 많았지만 특히 상서리 돌담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2006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습니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은 인간 정서의 가장 자연스러운 마음결을 일깨웁니다. 편안함, 정겨움, 모퉁이 너머에 대한 호기심…. 참으로 편하게 골목을 돌아다닙니다. 돌담 너머에 농기구, 닭과 소. 그러고 보니 외양간도 돌로 담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대나무로 문을 만든 게 이 마을의 독특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긴꼬리투구새우가 상서마을 논에 아직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패널을 읽어 보니 고생대의 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친 농약 사용으로 멸종 위기에 몰린 희귀종이더군요. 고생대 이후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은 보기 드문 생물.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은행나무와 같은 존재? 해충을 잘 잡아먹어 친환경 농법에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렁이 농법, 오리 농법과 같은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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