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임금의 모습을 그렸느냐...  외국인의 일기

                                                                                    글 : 하얀 땡그라미

카메라가 없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일상의 모습을 어떻게 남겼을까요?

보통은 화가에게 부탁을 합니다. 선비들의 계모임 행사에서도 출석한 사람들의 명단과 함께 요즘 우리들이 인증사진을 찍듯이 화가에게 부탁하여 기념그림을 남기죠.

선조임금 시기에 독서당에서 공부하던 유성룡, 이이, 정철 등이 참가한 모임을 그린 그림입니다. 산좋고 물 좋은 곳에서 선비들이 모여있고 참가자들의 명단도 있습니다. 옆의 그림은 1591년 사헌부 감찰관 24명의 계모임 그림으로 작년에 화순에서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은 그 어떤 책에서도 모습을 볼 수 가 없습니다. 그저 어진(임금님 초상화)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늘아래 가장 높은 사람인 임금님은 신하들이 함부로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임금님이 행차하신 곳의 모습을 그린다해도 임금님의 모습만큼은 빈 공간으로 남겨놓습니다. 그러면 임금자리인줄 어떻게 알까요?

임금님이 앉으시는 용상이나 일월오악도 병풍, 말, 깃발, 가마 등으로 대신 표시합니다.    

영조임금님이 한양을 가로지르는 개천(청계천)에 홍수 방지를 위해 바닥을 긁어내는 준설작업을 참관하시는 모습을 그린 '수문상친림관역도'의 부분입니다. 오수문위에 흰 천막이 있고 그 아래 임금을 위한 산(양산)이 보이죠. 자리는 비어있지만 바로 저곳에 임금이 친히 납시어있음을 뜻합니다.

아래사진은 정조임금의 화성행차도 부분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하여 수원행궁 낙남헌에서 특별 과거(별시)를 치렀습니다. 노론의 힘을 누르고 왕의 신하를 만들기 위해 문신을 위한 규장각을 만들고 무신을 위해서는 장용영을 만들었지요. 이날은 문신 5명, 무신 56명이 과거에 붙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새로운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원의 아버지 사도세자에게로 가는 능차도에도 갑옷을 입은 늠름한 정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양산을 쓴고 있는 왕의 말만 보입니다.

그런데 중앙 박물관 조선실에서 왕이 그려진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임금의 모습이 그려진 의궤는 처음 봤거든요.

감히 누가 왕의 모습을 저렇듯 생생하게 그릴수 있었단 말입니까? 아, 알고 봤더니 외국사람(영조임금 당시 청나라 사신 아극돈)이 조선을 방문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왼쪽(서쪽)의 곤룡포(붉은 용포)를 입은 영조임금과 오른쪽(동쪽)의 청나라 사신이 보입니다.

당시 조선과 청과의 관계를 알수 있는 자리배치입니다. 여러분도 중앙박물관에 가시면 이 신기한 그림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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